이미 폐지된 법 또 폐지하자니…국회의 도넘은 '실적 채우기'

입력 2020-11-20 06:00   수정 2020-11-20 16:27



21대 국회가 출범 5개월여 만에 의원 발의 법안 5000여건을 쏟아냈다. 이렇게 발의된 법률안 중에는 이미 폐지된 법안의 하위 령(令)을 정비한단 이유로 여러 건의 폐지안을 쪼개 발의하거나 기관의 명칭만 일부 손질하는 법안들이 포함됐다. 국회가 '발의 실적 채우기용' 법안을 쏟아낸다는 비판이 나온다.

1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박재호 의원실은 지난 9월 국가재건최고회의령 폐지법률안 3건, 국가재건최고회의포고 폐지법률안 2건을 '쪼개기' 발의했다. 이들 법안은 이미 1963년 효력을 상실한 국가재건최고회의조치법과 2009년 폐기된 국가재건최고회의법에 따른 관련 명령과 포고 등을 정비한다는 이유에서 발의됐다. 근거법이 효력을 상실해 국민 누구도 존재를 몰랐던 하위령을 길게는 거의 60년 후에야 폐지한다며 나선 셈이다.

이 법안들은 지난 20대 국회 당시 김종회 전 의원에 의해 발의됐다. 박 의원실 법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된 김 전 의원의 법안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내용으로 '재탕'했다. 이 의원실은 이와 함께 예금동결 일부해제 폐지법률안과 군사혁명위원회포고 폐지법률안 등 국가재건최고회의조치법을 근거로 한 폐지안을 10건 무더기 발의했다. 1961년 처리된 군사혁명위원회포고제3호등 폐지에 관한 법률이 하나의 법안이지만 여러 건의 령과 포고를 일괄 폐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박 의원실 관계자는 "1호, 6호, 24호 등으로 나눠져 개별법으로 인정되는 만큼 폐지법률안도 각각 내야 한다는 법제처와 국회법제실의 의견에 따른 것"이라며 "입법 실적쌓기용이라고 일컫는 ‘쪼개기 법안’과는 차이가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국방부 등 관련 부서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사문화된 법이지만 악용 소지가 있는 만큼 반드시 폐지되어야 하는 법이었고, 폐지 방식은 법제처와 국회 법제실, 의안과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이뤄졌다"라며 "국회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조직의 명칭이나 직책을 바꾸는데 그치는 내용의 법안도 다수였다. 지난 7월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개정안은 대한적십자사 기관장을 '회장'에서 '총재'로 개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11월6일 발의된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은 개인정보 보호위원회의 명칭을 '개인정보 보호 및 활용 위원회'로 변경하고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민간의 참여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행 법령상 '인명구조견'으로 되어있는 소방견의 명칭을 '119구조견'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법안도 발의됐다. 지난 9월 발의된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 개정안은 소방견에 대한 위상과 활용성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한 입법 전문가는 "의원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의원 보좌진의 성과를 법안 발의 건수나 의결 실적으로 보는 곳이 있기 때문에 무분별한 법안 발의 현상이 나타난다"며 "발의와 처리가 용이한 '실적 채우기'용 법안이 늘수록 국민 삶에 꼭 필요한 법안은 뒷전으로 밀릴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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